우계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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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계 이씨는 강릉시 옥계면 일대에 위치했던 옛 지명 우계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 좌복야를 지낸 이양식이며, 그의 5세손 이구가 경주 이씨에서 분적하여 우계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우계 이씨는 종파와 옥천부원군파로 나뉘며, 고려 시대에는 이구, 이의 등이, 조선 시대에는 이수형, 이광식, 이복남, 이현상 등이 주요 인물로 활동했다. 주요 집성촌은 서울 서초구, 경기 남양주시, 충남 당진시 등에 분포하며, 2015년에는 약 19,585명이 우계 이씨 성을 가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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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조 및 본관
우계 이씨(羽溪 李氏)의 시조 '''이양식'''(李陽植)은 알평의 47세손 이선용(李宣用)의 둘째 아들로 고려 때 좌복야(左僕射)를 지냈다. 이양식의 아들 이순우는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제주,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국자대사성(國子大司成)에 이르렀다. 이양식의 5세손 이구(李球)는 초명이 옥(沃)으로, 고려 충렬왕 8년(1283년) 원(元)나라에 들어가 약관 18세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귀국 후 고려 조정에 중용(重用)되어 예빈경(禮賓卿)에 이르렀으며, 당대의 문명(文名)을 날렸다. 특히 시문에 능하여 삼척(三陟) 죽서루에 그의 시문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명성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구에 이르러 경주 이씨(慶州 李氏)에서 분적(分籍)하여 본관(本貫)을 우계(羽溪)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녹전면에 속해있는 녹내리는 우계 이씨의 집성촌이다.[1]
우계 이씨는 크게 종파(宗派)와 옥천부원군파(玉泉府院君派)로 나뉜다. 종파는 홍천공파, 별좌공파, 감역공파, 참봉공파, 장사랑공파, 부사정공파, 사정공파, 사과공파, 직장공파로 분파된다. 옥천부원군파는 찬성공파, 참판공파, 충위공파로 분파된다. 원수공파의 이의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으로, 요동 정벌에 참가하고 조선 개국원종공신 1등에 책록된 인물이다. 충장공파의 이복남은 임진왜란 때 전라병사로서 남원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충신이다.[1]
우계(羽溪)는 강원도 강릉시(江陵市) 옥계면(玉溪面)에 위치했던 옛 지명이다. 본래 고구려의 우곡현(羽谷縣)이었는데,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년) 우계(羽溪)로 고쳐서 삼척군(三陟郡)에 속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강릉에 속하였다. 조선 세조 때 강릉대도호부에 진관이 설치되면서 우계면으로 직촌이 되었다. 1914년 우계현의 옛 별호인 옥당(玉堂)의 이름을 따서 옥계면으로 개칭하였다.
3. 분파
3. 1. 주요 분파 상세
우계 이씨는 크게 맏집인 종파(宗派)와 둘째 집인 옥천부원군파(玉泉府院君派)로 나뉜다.
종파는 종파(홍천공파), 별좌공파, 감역공파, 참봉공파, 장사랑공파, 부사정공파, 사정공파, 사과공파, 직장공파로 나뉘고, 옥천부원군파는 찬성공파, 참판공파, 충위공파로 나뉜다.3. 1. 1. 홍천공파(洪川公派)
파조는 이대근이다.3. 1. 2. 부사정공파(副司正公派)
이경연은 이의의 손자이자 이인숙의 차남으로, 부사정공파(副司正公派)의 파조이다.
4. 주요 인물
이양식(李陽植)은 우계 이씨의 시조로, 고려 때 좌복야(左僕射)를 지냈다. 그의 아들 이순우(李純祐)는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대사성(國子大司成)에 이르렀다.[1]
우계 이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5명을 배출하였다.[1]
4. 1. 고려
- 이구(李球, 1265년 ~ ?): 초명은 옥(沃). 이양식의 5세손으로, 고려 충렬왕 8년(1283년) 원나라 진사에 급제하고, 예빈경을 지냈으며 시문에 능했다.[1]
- 이억(李嶷): 자는 신지(信之), 원군(原君), 호는 퇴은(退隱). 이구의 증손으로, 고려 말기 문신이다. 요동 정벌에 참가했으며, 조선 개국원종공신 1등이다.[1]
4. 2. 조선
- 이수형(李秀亨, 1435년 ~ 1528년): 자는 영보(英甫), 호는 도촌(桃村).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1455년 단종이 폐위되자 관직을 사퇴하고 원호, 조려 등과 함께 단종이 유배된 청령포 근처에서 시국을 논하고 단종의 능침이 있는 북쪽을 향해 문을 낸 집에서 은거하였다. 세조가 음식과 땅을 하사했으나 거절했고, 성종 때 다시 직첩이 내려졌으나 거절하였다. 70년간 단종을 추모하며 은거하다 사망하였다.[1]
- 이지방(李之芳, 1466 ~ 1537)[1]
- 이대근(李大根, ? ~ ?): 자는 불발(不拔). 조선 중기 문신으로, 홍천현감을 지냈다.[1]
- 이광식(李光軾, 1493년 ~ 1563년): 조선 중기 무신으로, 평안도병마절도사, 병조참판을 역임했다.[1]
- 이전(李戩, 1517년 ~ ?): 이광식의 아들. 자는 언우(彦祐). 경상좌병사, 평안도병마절도사, 병조참판, 포도대장 등을 역임했다.[1]
- 이용(李庸+戈, 1533년 ~ 1591년): 이광식의 아들. 자는 언선(彦善). 함경북도병마절도사, 함경남도도순찰사 등을 역임했다.[1]
- 이감(李敢): 이광식의 아들. 조선조 병조참판, 도승지, 형조참판, 대사헌을 역임했다.[1]
- 이효린: 이수형의 증손, 임진왜란 의병장[1]
- 이성헌: 이감의 아들. 조선 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승문원주서, 성균관전적, 판관을 역임했다.[1]
- 이희헌(李希憲, 1569 ~ 1651): 자는 가정(可正). 조선 시대에 의과에 급제하여 정헌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냈고, 양천현령을 역임했다.[1]
- 이여빈(李汝馪, 1556 ~ 1629): 이수형의 4대손. 조선 시대에 벽사도찰방, 성균관전적, 진주, 안동향교 제독을 역임했다.[1]
- 이잠(李土+岑, 1581 ~ 1655): 이수형의 4대손. 문과에 급제하여 풍기군수, 홍문관교리를 역임했다.[1]
- 이복남(李福男, ? ~ 1597): 조선 중기 무신. 이전의 손자. 임진왜란 때 전라병사로 남원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1]
- 이명남: 이감의 손자. 조선 시대에 참판을 역임했다.[1]
- 이경항: 이감의 증손, 이명남의 조카. 문과 좌랑, 첨정을 역임했다.[1]
- 이서우: 이경항의 넷째 아들. 자는 윤보, 호는 송곡. 조선 시대에 참판을 역임했다.[1]
- 이상우: 자는 설지 또는 성택.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교리, 경안역찰방을 역임했다.[1]
- 이태망: 조선 시대에 승지, 아장을 역임했다.[1]
- 이봉래: 조선 시대에 부사, 승지를 역임했다.[1]
- 이휘도: 자는 이시.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해 영조 때 찰방, 직강을 역임했다.[1]
- 이상호: 조선 후기의 학자, 효자.[1]
- 이진주: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해 영조 때 전적, 진보현감을 역임했다.[1]
- 이진만: 조선 후기의 학자, 이여빈의 4대손[1]
- 이현상(李顯相, 1770 ~ 1822): 자는 상지, 호는 태화. 조선 후기의 문신, 시인.[1]
- 이봉녕(1793 ~1871): 자는 주경, 호는 분서. 조선 후기의 문신, 시인.[1]
- 이재명(1830 ~ 1891): 자는 보여, 고종 때 문과에 급제, 사헌부감찰, 집의 역임[1]
- 이재정(1846 ~ ?)[1]
- 이민선[1]
- 이휘선(1865 ~ 1944): 대한제국의 법관, 변호사, 일제 강점기의 변호사[1]
우계 이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5명을 배출하였다.[1]
4. 3. 근현대
- 이휘선(1865년 ~ 1944년): 대한제국 및 일제 강점기의 법조인이다.
- 이원철: 한국 최초의 이학박사(천문학)이자 독립운동가이다.
5. 집성촌
6. 인구
禹溪 李氏중국어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19,585명으로 집계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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